스페인 계 유대인인 부모가 미국으로 이주하여 1947년 뉴욕에서 태어난 머레이 페라이어는 매네스 음대에서 호르쵸프스키에게 건반악기와 지휘, 작곡을 배웠고 여름 동안에는 말보로에서 루돌프 제르킨과 파블로 카잘스 등과 함께 공부했다. 그는 1972년 제4회 리즈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본격적인 전문연주자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 콩쿠르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당시 페라이어의 스승이었던 호르초프스키가 리즈 콩쿠르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 대회 우승자를 등록했다고 하자, 그 소문을 들은 몇몇 경쟁자들이 등록을 취소했다고 한다.
우승 후 페라이어는 세계 곳곳에서 리사이틀을 가지며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1990년 그에게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 생겼다. 악보에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베인 것이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상처가 덧나 항생제를 먹게 되면서 건강이 나빠지게 되었고 1991년에는 그 염증으로 인해 손가락 뼈에 변형이 와 여러 차례의 수술을 받으며 몇 년간 피아노를 떠나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긴 치료기간 동안 절망하지 않고 재기를 준비한 그는 1990년대 후반 다시 돌아왔고, 2000년에 출시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은 빌보드 차트(Top 10 Billboard Classical Chart)에 연속 15주나 오르며 음악 애호가들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2004년 나은 줄 알았던 손가락 부상이 재발하여 모든 연주 일정을 취소하며 또 한번의 위기가 있었으나 역시 불굴의 의지로 이겨내고 다시 돌아온 머레이 페라이어. 그는 이 시대 진정한 거장이다.
이번 한국 공연 레퍼토리 선곡에 관한 설명해주세요.
프로그램을 고를 때는 그 순간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레퍼토리를 항상 반영합니다. 베토벤은 항상 관심 있는 레퍼토리지만, 지금 작업 중인 헨레 원전 악보판 베토벤 소나타 전곡 편집 작업 프로젝트로 인해 더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바흐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레퍼토리입니다. 브람스 역시 항상 좋아하는 작곡가이고 슈만은 최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쇼팽은 피아니스트로서, 작곡가로서 관심 있는 레퍼토리입니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로부터 받은 영감은 어떤 것이 있나요? 당신에게 그는 어떤 연주자인지 말씀해주세요
호로비츠는 피아노 연주자로서 제게는 영웅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18세에 사사할 기회 있었는데 당시에는 좀 무서워서 그 때는 배우지 않았었어요. 굉장히 중요하고 훌륭한 음악가신데 당시에 같이 작업하지는 않았습니다. 수 년 후에 같이 작업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왔죠. 그 때부터 너무 잘 지냈고 뉴욕에서도 자주 만났습니다.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찬사를 받다가 손가락 부상을 입어 무대에 설 수 없었습니다. 그 어려운 시기를 보낼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인가요?
끈기! 저는 결코 포기 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어요. 음악을 사랑해서 음악에 계속 몸 담고 싶었습니다.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의 지휘 제의를 이 맘 때쯤 받았는데 연주를 하지 않고 음악을 계속 할 수 있어서 기쁘고 좋았습니다. 단, 피아노 연주도 같이 하고 지휘도 병행할 수 있어야지만 제의를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했죠.
오랫동안 연주를 중단했다가 다시 컴백했던 무대가 기억납니까? 그 때의 감회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너무 좋았습니다. 개인적인 삶이 변화를 가져올 때보다는 작품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더 느낄 때 특별한 순간들이 찾아오더군요. 제 개인적인 삶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아닌, 그 연주 안에서 음악 때문에 특별한 순간들이 찾아오는 겁니다.
성공적으로 재기한 뒤 음악이나 삶, 가치관, 세계관 등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나요?
제 음악이나 삶, 세계관과 가치관에 있어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판단하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그걸 판단하는 건 다른 것들이 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어난 변화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건 매우 미묘합니다. 변화는 즉각적이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제 삶에서 더 중요한 것은 더 중요해졌고 덜 중요한 것은 덜 중요해졌다는 걸 경험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예를 들자면 이런 겁니다. 연주를 할 때 기교보다는 음악적인 질이 더 중요하다라는 것이죠.
지금 현재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항상 더 나은 연주자가 되고 싶습니다. 아주 실제적인 꿈이지만, 생각해보면 ‘더 나은 연주자라는 게 무엇일까?’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더 많은 가능성을 보고, 그리고 저는 음악과 인생의 관계에 대해 더욱 깊이 이해하고 싶습니다. 음악은 이상화 된 형태의 것이거든요. 모든 불협화음들은 다 음악에서 결국 해소됩니다. 음악은 지구 상의 모든 가능성들을 보게 하고, 이상적인 세상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모든 가능성들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겁니다.
한국 관객들에게 한 마디 해주신다면.
한국 관객을 만나는 것은 항상 즐겁습니다. 관객의 열띤 반응이 흥미롭고 인상적이죠. 젊은 관객이 너무 많아서 굉장히 인상적이고 감동적이었습니다.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을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