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에 찾아 온 겨울나그네
“왜 <겨울나그네>인가요.”
디토 페스티벌 아홉 번째 시즌의 오프닝으로 연가곡<겨울나그네>를 택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리처드 용재 오닐에게 물었다.
“가곡이야말로 프란츠 슈베르트 최고의 걸작이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디토 페스티벌 ‘슈베르티아데’를 위해 슈베르트가 남긴 최고의 작품들을 골랐어요. 그가 가장 내밀한 생각과 감정들을 쏟아 부은 작품들이지요.”
슈베르트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시즌을 열었다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는 슈베르트의 음악성에 대한 찬사를 이어나갔다.
“아름다움은 두말할 나위가 없고요. 절묘한 화성진행이 특유의 청명함과 영원불변성을 끌어냅니다. 어딘가 모차르트와도 닮은 구석이 있어요.”
<겨울나그네>를 오프닝 콘서트의 프로그램으로 정한 직후 그는 성악가를 섭외해 원곡 그대로 연주할 계획을 세웠다고 했다. 디토 페스티벌 역사상 최초로 성악가의 영입이 이뤄질 뻔한 것이다. 그러나 결국 성사되지는 못했다. 디토 멤버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겨울나그네>를 잘 부르는 리트 가수를 찾기란 만만치 않았다.
“<겨울나그네>는 성악가와 피아니스트 모두에게 어려운 작품이지요. 결국, 제가 비올라로 다시 연주하게 됐어요. <겨울나그네> 음반을 낸 지 8년 만이군요.”
리처드 용재 오닐에게는 감회가 남다를 법했다. 그가 <겨울나그네> 음반을 출시하고 기념 리사이틀을 연 2007년은 앙상블 디토가 데뷔한 해이기도 했다. 그 후 앙상블 디토의 정기 연주회는 페스티벌로 성장했고, 음반 출시와 투어도 하게 됐다.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도 창단됐다.
또한 ‘리처드 용재 오닐을 빼고는 다 바뀌었다’고 할 만큼 많은 객원 멤버들이 들어오고 나갔다. 음악가들 외에도 비주얼 아티스트를 비롯한 타 장르의 예술가들이 직간접으로 디토 페스티벌에 참여하면서 축제는 점점 다채로워졌다.
수많은 변화의 시간을 돌아와 다시 마주한 <겨울나그네>는 여전히 변함없기도 하고, 많이 달라져 있기도 했다. 리처드 용재 오닐은 <겨울나그네>를 처음 공부하던 때를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는 가사로 쓰인 빌헬름 뮐러의 시를 영어 번역본 대신 독일어 원본으로 읽었다.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는 한편 한 단어씩 번역해 뉘앙스를 확인하고, 그 단어가 어떤 멜로디와 접목되어 있는지 살폈다. 그는 “슈베르트의 텍스트를 공부하면서 가사와 음악이 얼마나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지 그 위대한 천재성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8년 만에 연주하는 <겨울나그네>는 그에게 어떻게 다가왔을까.
“음악이 재창조(연주)되는 순간 그 음악이 흘러가는 대로 제가 따라가야 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어요. 그러나 저는 그때보다 나이가 들었고, 죽음이라는 대상을 좀 더 가까이 바라보게 됐어요. 사람은 누구나 나이 들수록 성숙한 시선으로 죽음을 바라보게 되죠.”
<겨울나그네>의 배경은 춥고 쓸쓸한 겨울이다. 그 공허하고 외로운 정서가 푸르고 생기 넘치는 초여름의 축제와는 잘 어울릴까. 이는 그가 이번 페스티벌을 프로그래밍하는 단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했던 점 중 하나였다. 그는 무리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겨울나그네>를 언제나 겨울밤에 연주할 수만은 없잖아요. 때로는 여름날 환한 대낮에, 에어컨이 작동되는 불 꺼진 공연장에서 연주하게 될 수도 있는 거죠. 그렇더라도 청중은 모든 온기가 제거된 그 차가움, 뼛속까지 사무치는 추위가 어떤 건지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추운 밤에 세상과 이별하기 위해 정처 없이 헤매는 한 남자를 상상해보면, 내가 지금 어느 계절에 속했는지에 상관없이 그 처지를 공감할 수 있어요. 철저한 고독과 우울, 절망은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슈베르트가 어떤 사람이었으며, 말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도 이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슈베르트는 극도의 경제적인 궁핍 속에서 세상을 떠났어요. 기거할 곳조차 없이, 끔찍한 질병에 걸려 고통에 시달리다가 말이죠. 우리가 기리는 많은 작곡가가 이렇게 후대에 많은 걸 남기고 자신은 희생했어요. 불행히도 예술이란 바로 그런 것이죠.”
글 | 김소민 (음악 컬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