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개의 손가락, 그리고 두 개의 심장
“네 개의 손과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해 쓰인 작품 중에서 가장 위대한 네 곡을 들려드릴 겁니다.”
올 시즌 디토 페스티벌에 합류해 임동혁과 호흡을 맞출 예정인 타이완계 미국인 피아니스트 스티븐 린은 이렇게 말했다.
‘슈베르트 판타지’라는 부제가 붙은 두 사람의 연주회는 한 대의 피아노에 나란히 앉아 연주하는 ‘피아노 듀엣(포 핸즈)’에서 시작해, 두 대의 피아노를 마주 놓고 연주하는 ‘피아노 듀오(투 피아노)’로 옮겨 간다.
첫 곡은 지난해 드라마 ‘밀회’에서 주인공 선재와 혜원의 연주로 화제가 됐던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환상곡 f단조>이다. 회상 적이면서 애잔한 정서와 장중하고 뜨거운 에너지가 교차하는 이 곡에서 두 사람의 호흡이 얼마나 긴밀한지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이어 이들은 모차르트, 라흐마니노프, 라벨이 남긴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명곡들을 차례로 들려준다.
스티븐 린은 연주자 측면에서 볼 때 ‘포 핸즈’와 ‘투 피아노’는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고 했다.
“포 핸즈 레퍼토리들이 아무래도 투 피아노 레퍼토리보다 연주자들끼리 밀착되죠. 두 명의 피아니스트가 나란히 앉아 마치 한 명이 연주하는 것처럼 소리를 내야 해요. 음악적으로나 이성적으로나 완전히 똑같이 느껴야 하는 거죠. 각자 자신만의 연주 습관을 지니고 있어서 연주가 몹시 까다로워요.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레퍼토리에서는 그에 비해 좀 더 개인적인 자유가 주어지고요.”
하지만 이런 어려움은 고스란히 연주자의 몫일 뿐, 청중은 그저 듣고 즐기면 된다. 그는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환상곡 f단조>를 듣고 좋아하지 않을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라며 “진정한 걸작”이라고 덧붙였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작품 대부분은 성악적인 특징을 나타냅니다. 이따금 장조와 단조 사이를 노닐기도 하고요. 물론 선율도 아름답지만, 저는 아름다운 멜로디만으로는 슈베르트의 음악을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때로는 그의 음악에 깊은 절망과 비극, 몸부림이 담겨 있고, 그것은 아름답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슈베르트의 음악이 단순한 아름다움 그 이상이라는 거예요.”
스티븐 린과 디토 페스티벌 사이에 다리를 놓아준 것은 파트너 임동혁이었다.
음악가로서 스티븐 린을 높이 평가한 임동혁은 음악감독인 리처드 용재 오닐에게 객원 멤버로 그를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오닐은 2013년 라 호야 페스티벌에서 드디어 린을 만났고, 두 해 만에 디토 페스티벌에 초청했다.
린은 임동혁과의 인연을 설명하며 그에 대한 존경심을 강하게 드러냈다.
“동혁과는 2007년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알게 됐어요. 동혁이 종종 친구들을 자신의 아파트로 초대해서 한국 음식을 만들어주곤 했거든요. 다른 친구들과 함께 저도 몇 차례 동혁의 아파트에 갔었죠. 처음엔 음악에 관한 대화가 전혀 오가지 않았어요. 당시 음악을 대하는 제 모습이 그리 진지해 보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정말 그렇기도 했고요. 그러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동혁과 급격히 친해지면서 음악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됐죠. 저는 동혁이 쇼팽 콩쿠르에 입상했을 때부터 쭉 그를 우러러봤어요. 피아노 연주에 관해 그에게 많은 조언을 구하고 있고요. 동혁은 제 예술적인 성장에 언제나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에요.”
글 | 김소민 (음악 컬럼니스트)